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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기록의 걸작 악학궤범

diary3261 2025. 3. 8. 12:29

조선 후기의 음악 문화가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악학궤범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음악관련 기록물입니다.

악학궤범은 시간 예술인 음악의 형체와 시행하는 법을 기록하여 음악의 전승이 단절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서문에 기술된 것처럼 '아무리 좋은 음악도 한번 흩어지고 나면 형체가 없어지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악보와 악기 그림, 음악을 시행하는 법에 관한 기록을 통해 보완하고자 한 것입니다.


1.악학궤범 편찬 배경

조선 건국 이후 음악 실제를 정비하는 데 쏟아부었던 노력은 세조까지의 작업을 통해서 거의 마무리됩니다. 조선 전기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의 업적을 찬양한 노래 납씨가, 정동방곡, 몽금척, 수보록, 근천정, 수명명 등을 정도전과 하륜 등에 의해 만들어 불리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사 때 불리는 악장을 고려 시대의 아악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아악기도 오래되어 모두 낡았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유교에 투철했던 사대부 출신의 선비들에게는 예악 사상을 담고 있는 아악을 제대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종은 아악을 정비하고 고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의 전통 음악인 향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향악곡도 만들었습니다. 또 정간보와 같은 기보법도 새로 만들어서 이 시대의 음악이 후대까지 정확하게 전해지는 데 무리가 없게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 전기 세종대의 음악 문화는 세조가 이어받고 세조의 음악은  다시 성종이 정리하여 악학궤범이라는 책을 펴내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성종은 국립음악 기관인 장악원의 새 청사를 건립하고 국가 음악의 새로운 백년대계를 세우는 등 안정적인 음악 문화를 계획합니다. 또 선왕들이 일군 예악 정비의 성과를 훼손시키지 않고 잘 전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구상합니다. 성종 6년 무렵 관료이자 음악에 밝은 성현(1439~1504)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국가 음악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올려 신서 강독을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음악 문헌으로 평가되는 악학궤범 편찬이 성현을 중심으로 추진됩니다.

2. 악학궤범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

악학궤범 편찬에는 성현 외에 유자광, 신말평, 박곤, 김복근 등이 참여했는데 이 중에 유자광과 신말평은 음악을 아는 관리로 선발된 이들이었고 박곤과 김복근은 장악원의 악사였습니다. 특히 김복근은 거문고 연주가로도 유명했습니다. 이처럼 관료와 학자, 음악을 전문가로 구성된 집필진이 심혈을 기울인 끝에 1943년 성종 24년에 국가 의례 음악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집대성한 악서인 악학궤범이 탄생됩니다.

3. 악학궤범의 역사적 의의

첫째, 악학궤범 서문에  시간 예술인 음악의 형체와 시행하는 법을 기록하여 음악의 전승이 단절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음악은 여러 차례의 전쟁과 국가 혼란으로 인해 의례 음악의 단절이 불가피한 때에도 악보와 악기 그림, 음악을 시행하는 법에 관한 기록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악학궤범을 참고로 국가 예악 제도를 전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악학궤범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현재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둘째, 악학궤범은 조선 전기에 이루어진 폭넓은 악론 연구의 내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진양악서, 율려신서, 주례, 송사, 오해, 문헌통고, 주례도, 예서, 대성악서, 악기, 대성악보, 석명, 풍속통의, 수서 등의 문헌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이 내용이 악학궤범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인 악학 연구 방법론과 수준 및 한국 음악 이론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 입니다.

셋째, 악학궤범의 많은 내용은 궤범이라는 말처럼,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을 기술하였다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4.악학궤범의 기록

국악 기록의 걸작 악학궤범
악학궤범 표지



역사적 의의에서 잠깐 언급하였는데, 악학궤범은 기록된 내용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을 기술하였습니다. 제2권과 제3군에는 국가의 여러 의례에 참여하는 음악인의 수, 의상, 계기, 절차 등이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학궤범의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는 악기 설명입니다. 아악기, 당악기, 향악기에 대한 다양한 기록은 물론, 악기 제작 방법, 조현법, 연주법 등을 그림으로 그려 상술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향악기에 관한 내용은 국악기 연구에 전무후무한 기록으로서 정보의 다양성과 구체성에서 국악기에 관한 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악학궤범에는 삼국 시대 이래로 궁중 공연을 통해 전승되어 온 노래들이 기록 되었습니다. 악학궤범은 한글 창제 이후 편찬되었기 때문에 한글 가사를 그대로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 노래 중에는 정읍사, 동동 등도 포함되어 있어 공연 문화 속에 수용된 삼국 시대의 옛 노래의 전승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악학궤범은 음악뿐만 아니라 국가 의례에 소용된 악가무를 종합적으로 다루었으며, 특히 궁중 정재의 공연 내용 및 의복과 소품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귀중합니다. 이 기록은 국가 의례에서 음악과 춤이 불가분의 관례였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악가무의 균형 있는 전승이 예악의 위용을 온전히 전승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세종 때에 꽃핀 조선 전기의 음악 문화는 세조가 이어받고, 세조의 음악은 다시 성종이 정리하여 편찬한 음악의 이론과 역사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우리나라 최대의 음악책인 악학궤범은 우리 음악의 원리뿐만 아니라 각종 악기와 무용에 이르기까지, 당악.향향을 포함한 광범위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의 음악 문화가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음악사 연구를 포함한 한국 문화사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