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음악 풍류 음악
1.선비들의 풍류 문화
조선 시대에는 어느 때보다도 선비들의 풍류 문화가 융성했습니다. 선비들은 유교의 가르침에서 중시하는 중용의 정신을 음악을 통해 얻고자 하였습니다. 마음의 평정과 바름을 얻는 데 음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여기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했던 것입니다. 선비들의 음악 생활은 단순히 애호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있는 생활을 글로 짓거나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자신들이 연주하는 곡을 기억하기 위한 기보 방법을 고안하여 악보를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풍류를 애호하는 문인들의 음악 사랑은 가객과 금객 등의 전문 음악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독자적인 풍류 문화의 음악적 기반을 다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선비들의 풍류 문화에서는 거문고, 가야금, 비파, 젓대, 퉁소를 독주하거나 두세 가지 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양금과 생황 등이 더 첨가되었지요. 그리고 전문 악사들을 초청한 풍류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해금에 장구가 어울린 wnf풍류 합주가 연주되었습니다. 이런 기악 연주에는 가곡과 가사 등의 노래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전문 가객의 노래에 선비들이 한두 악기로 반주하거나 여기에 전문 연주가들이 함께 어울린 음악 모임은 풍류 문화의 전형적인 형태였습니다.
2.풍류 음악의 기악곡
선비들은 어떤 음악을 즐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선비들이 자신들이 즐긴 음악을 기록한 고악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악은 기악곡인 보허사, 여민락, 영산회상과 노래에 거문고 반주 선율을 기보한 가곡 등입니다.
선비들의 풍류는 그림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경윤의 달 아래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그림인 월하탄금도는 달빛이 훤하게 비치는 멋진 산기슭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 윤제홍의 소나무 아래서 물을 바라보는 금림인에서는 초록빛 싱싱한 소나무와 시원한 물줄기가 어울린 야외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모두 자연 속에, 나아가 음악을 통해 자연과 대화하는 전형적인 풍류 정경입니다. 이외도 전기의 매화 초옥도 , 겸재 정선의 서원소정 등 수많은 그림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풍류 선비들과 금객, 가객들은 음악을 연주하면서 새로운 곡을 찾기보다는 그 전에 알고 있던 가락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음악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을 즐겼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래 연주해 오던 음악에서 새순이 돋듯 새 곡이 탄생되는데 이것을 파생곡 또는 변주곡이라고 합니다. 원곡과 아주 닮은, 그러나 조금 다른 파생곡들은 누군가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창조적인 변화를 주었기에 탄생된 것이겠지만 작곡자가 밝혀진 경우는 없습니다. 풍류방 음악 문화 중에서 재미있는 또 한 가지는 새로 탄생한 파생곡의 연주 방식힙니다. 영산회상을 예로 들면 영산회상의 원조는 현재의 상영산이었습니다. 물론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는 상영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냥 영산회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곡이 두어 곡 파생되어 나오자 자연스럽게 이들을 구별하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영산은 맨 처음의 영산회상이라는 뜻이고 중영산은 두 번째 영산회상, 세령산은 세 번째 영산회상이 되었습니다. 영산회상의 변주와 파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령산에서 본 가락을 덜어내어 변주시킨 가락덜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도드리장단으로 연주하는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그리고 타령, 군악 등의 악곡을 연속 연주함으로써 모두 아홉곡으로 이루어진 영산회상이 완성됩니다.
3.풍류음악의 성악곡 시조, 가곡, 가사
시조는 가곡과 같이 시조의 시를 노래하지만 가곡에 비해 노래의 형식이나 창법이 단순합니다. 또 가곡이 반드시 줄풍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데 비해 시조는 반주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쉽게 부를 수 있어 좀더 서민적입니다. 시조창의 출현 시기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조 무렵부터 성창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조 대의 문인 신광수가 관서악부에서 '일반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가객 이세춘'이라고 밝힌 데 이어, 정조 대의 문인 이학규가 '누가 꽃피고 달 밝은 밤을 아낀다고 하였는고! 시조 소리 참으로 처량하다'라고 시를 쓴 점에 비추어 시조는 영.정조 무렵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조는 원형인 평시조, 사설시조, 지름시조, 각시조, 엮음시조, 수잡가, 중허리시조 등이 파생되어 다양하게 분화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조가 대중들에게 널리 수용되는 과정에서 민요의 지역적 토리처럼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음악적 특징을 반영한 영제시조.완제시조.내포시조 등의 음악 지역권을 형성하였습니다.
가곡은 가사문학의 소산인 문장을 가곡이나 시조와 비스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음악입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같은 노래도 선비들의 풍류방 주변에서 즐겨 애창되었던 듯합니다. 현재는 춘면곡, 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양양가, 어부사, 길군악, 상사별곡, 권주가, 수양산가, 처사가, 매화타령 등 열두 곡이 전하고 있어 12가사라고도 부릅니다.
4.고악보의 발달
선비들이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했는지는 고악보를 통해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고악보란 옛날 악보를 말합니다. 대개 1920년대 이전에 전통적인 기보법으로 기록된 악보를 통틀어 고악보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의 길이, 높이, 가사, 장구점 등을 체계적으로 기보할 수 있는 악보 정간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세종 대부터입니다. 그리고 성종 대에는 거문고를 좋아했던 성현이 기존 악보에 거문고의 연주법을 더 첨가해서 만든 합자보를 창안하여 선비득의 거문고 음악 전승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그 외에도 금합자보, 양금신보, 현금동분유기, 한금신보, 낭옹신보와 어은보, 삼죽금보 등 백여 종이 전하며 이 밖에 가야금, 양금, 칠현금 등을 위한 고악보도 적지 않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전문 악사들을 초청해서 연주를 감상하고 또 그들과 함께 연주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독주나 병주 등 조촐한 형식으로 음악을 즐기고 직접 악보을 만들고 음악을 창작하면서 풍류 음악이라는 한 장르를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도 훌륭한 음악을 자연과 더불어 즐김으로 그들의 삶은 한층 여유로운 멋을 즐겼으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