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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백제의 노래, 정읍사
    국악 2025. 3. 14. 14:17

    1. 정읍사의 역사적 배경과 문헌적 기록

     

    정읍사는 백제 가요로,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작품입니다. 백제의 음악과 문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삼국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고려 시대 문헌인 『고려사』의 악지(樂志)에는 고려 시대 궁중에서 불렸던 여러 음악들이 정리되어 있으며, 백제의 노래로는 정읍사뿐만 아니라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지리산 등의 제목을 가진 노래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백제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속가요가 궁중 음악으로 편입된 사례로, 삼국 시대의 음악이 고려 시대까지 전승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정읍사는 특히 향찰(鄕札) 표기로 전해지며, 당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한글 창제 이전의 국문 표기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2. 정읍사의 내용과 문학적 분석

     

    정읍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저기 가는 바람도 막지 마라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는 밤길을 떠나는 남편의 안전을 기원하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의 첫 구절에서 ‘달하’는 밤길을 비추는 달을 뜻하며, ‘노피곰 도다샤’는 ‘높이 더욱 빛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는 남편이 무사히 귀가할 수 있도록 달이 길을 밝혀 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가족과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했던 백제인의 생활관과 신앙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정읍사는 고려 시대에 궁중에서 널리 연주되었으며, 궁중 춤인 **무고(舞鼓)**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고는 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군무 형태의 춤으로, 고려 궁중에서 연희와 함께 연주되었던 음악입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처용무(處容舞)**의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처용무는 궁중에서 액운을 쫓고 길상을 기원하는 춤으로,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정읍사의 음악이 계속해서 궁중의 주요 행사에서 연주되었음을 보여줍니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백제의 노래, 정읍사

    다.

     

    정읍사는 또한 조선 시대의 음악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과 『대악후보(大樂後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정읍사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도 지속해서 전승되었으며, 왕실에서 중요한 음악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정읍사는 단순한 민속 가요를 넘어 궁중 의례와 무용의 음악적 기반을 형성하며 한국 전통 음악사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 정읍사의 음악적 특징과 조선 시대의 발전

     

    정읍사는 백제에서 고려로 전해진 후 궁중 음악으로 정착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아악(雅樂)의 형식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정읍사는 주로 연회나 궁중 행사에서 불렸으며, 당악(唐樂)과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래는 백제의 민속 음악이었지만,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궁중 음악으로 편입되면서 음악적 편곡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고려 시대 정읍사는 궁중에서 춤과 함께 연주되는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궁중 춤 **무고(舞鼓)**입니다. 무고는 북을 두드리며 군무 형태로 진행되는 춤으로, 궁중 연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정읍사는 이 무고의 반주 음악으로 활용되며, 단순한 노래에서 벗어나 궁중 무용과 결합하여 더욱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려의 궁중에서는 연회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의례에서도 정읍사가 연주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고려 왕실에서 이 음악을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인식했음을 의미합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읍사는 더욱 발전하여 궁중 음악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수제천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수제천은 웅장하고 유려한 가락을 지니며, 왕실의 연회와 주요 행사에서 연주되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정읍사가 **처용무(處容舞)**의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처용무는 궁중에서 악귀를 쫓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식무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정읍사가 처용무의 반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이 음악이 단순한 향악을 넘어 국가적 중요성을 지닌 곡으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정읍사는 조선 시대의 음악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과 『대악후보(大樂後譜)』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악학궤범』은 성종 대에 편찬된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궁중 음악서로, 정읍사가 궁중 음악으로 편입되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악후보』에서도 정읍사의 악보가 기록되어 있어, 이 곡이 조선 시대까지도 지속적으로 연주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읍사는 백제에서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민속 음악에서 궁중 음악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단순한 민요가 아닌 국가적 의례와 깊이 연결된 예술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읍사는 궁중 무용과 함께 연주되며 보다 화려한 형식으로 변모하였고, 고려와 조선의 궁중 문화 속에서 점점 더 정교한 음악적 요소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읍사는 수제천으로 연주되며 한국 전통 음악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4. 정읍사의 문화적 의의와 현대적 가치

    정읍사는 단순한 음악적 유산이 아니라, 한국 고대 문학과 음악을 동시에 담고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향찰 표기로 기록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며, 백제의 음악적 정서를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또한, 고려 시대의 궁중 음악으로 전승된 사실은 백제 음악이 단순히 소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형과 발전을 거듭했음을 보여줍니다. 정읍 지역에서는 이 노래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가 열리며, 정읍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전통음악의 지속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읍사를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닌,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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